“1시간 기다려 들어갔더니 진료는 3분 걸렸다.”
“알약을 한번에 다섯 알을 먹고 있다. 항생제가 몸에 안 좋다던데……너무 많이 복용하는 것은 아닌지걱정된다.”
병원 진료를 받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공감할 법한 이야기이다. 대기실에서 한 시간이 넘게 앉아 있다가 간신히 들어갔더니 증상을 제대로 설명할 틈 조차 주지 않고 질문을 퍼붓는 통에 얼이 나가버린다. 심한 경우 병명도 제대로 듣지 못하고 진료실을 나서는 경우도 있다. 처방전을 들고 약국을 가니, 가벼운 감기 같은데…약사가 내어준 약봉지가 두툼하다. 감기보다 조금 더 큰 병이 걸리면, 동네 병원은 왠지 못미더워 대학병원에 가게 된다. 그래도 조금은 더 잘 봐주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바람을 품고 갔지만, 진료비를 보고서는 나도 모르게 ‘헉’ 하게 되기 일쑤다.
이와 같은 경험은 1차 진료기관, 즉 ‘동네병원’의 줄폐업과도 관련이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발표에 따르면, 2009년 9.4%를 기록하였던 1차 의료기관의 평균 폐업률은 2012년 89.2%까지 높아졌다고 한다. 환자들이 대형 병원으로 몰리며, 점차 경영난에 몰린 동네 병원들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1차 의료기관은쉽게 방문해 진료를 받을 수 있어 가벼운 질병의 치료와 예방 역할을 한다. 이른바 ‘생활밀착형 건강기관’인 것이다. 때문에 1차 의료기관의 공백이 생길 경우, 예방과 조기 발견이 어려워지며, 결국 의료비가 증가하게 되어 환자들에게 부담으로 돌아오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보건소는 237곳이 있지만, 1차 의료기관의 빈자리를 메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형편이다. 한편 1차 의료기관의 역할을 하는 동네 병원의 경우, 몰려드는 환자를 감당하느라 ‘3분 진료’를 감수해야 하며, 빨리 낫도록 하는데 급급해 항생제를 과다 처방하기도 한다. 또 수익을 내기 위해 비급여 약을 처방하는 등, 영리 목적의 진료를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이러한 가운데 이름 어디에도 ‘병원’이라는 글자는 없기에 어리둥절할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흔히 접하는 병원 그 이상의 몫을 해내고 있는 곳이 있다. 환자의 주치의 역할을 하는 1차 의료기관에서 더 나아가협동조합 정신을 바탕으로 ‘가족 주치의’, ‘마을 주치의’로서 발돋움 하고 있는 대전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을 만나보았다.
이름이 다소 생소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의료사협이란, 협동조합기본법에 근거해 지역주민과 의료인이 함께 만든 의료기관으로, ‘모두가 주인인 병원’이다. 소유와 운영을 의료인이 전담하는 것이 아니라 주민들 또한 일정 금액 이상의 출자를 통해 소유와 운영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 대의원회의와 잦은 마을 모임으로 사람들의 적극적이며 다양한 의견들이 수렴되고 운영에 직접 반영된다. 이러한 민주적인 요소는 민들레의료사협이 의료인 중심이 아니라 환자 중심의 의료체계를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이다.
사실 명칭 탓에, 이런저런 오해들을 사기도 한다. 봉사활동 단체인 줄 알고 있는 사람도 있고. 나아가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협동조합은 조합원들만 이용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 그에 대한 답은 ‘아니오’이다.‘민들레’는의료사협의 특징상 의료인 중심이 아니라 환자 중심의 의료체계 이기에 지역민 누구나 방문할 수 있는 열린 병원이다. 병원 운영 외에도 조합원과 지역민들을 대상으로 거리검진, 이웃의 건강을 돌보며 함께 공부하기 위한 건강강좌, 방문진료 등 보건예방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와의 통합에 힘쓴다. 특히 기금을 통해서 취약계층의 건강을 돌보는 일에도 참여하며 지역사회에 공헌한다. 소위 모두의, 모두에 의한, 모두를 위한 의료체계인 것이다.
모두에게 열린 한방거리검진
(제공: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협동조합의 취지로 시작한 ‘민들레’는 운영단계에서 소통이 가장 우선시 된다. 의료진과 지역환자들, 다른 직원들, 이사 또는 조합원들 사이에 서로 투명한 소통이 있었기에어려운 순간마다 잘 헤쳐나갈 수 있었다고 한다. 이 소통의 과정의 중심 가치는 바로 신뢰와 믿음이다. 이 신뢰는 의료체계에 어떻게 작용하는가?
조합원 가족주치의는 나를 잘 아는 의사이다. 주치의와 환자 관계가 형성 되면 단순히 건강적 문제 외에도 환자의 사정을 잘 알게 된다. 생활상의 어려움이나 마음의 문제로 발생하는 아픔까지 치료가 가능한 것이다. 몇 번 치료를 받고 나면 아프지 않아도 병원에 오셔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며 몸의 상태를 이야기하시는 어르신들도 계신다. 그러다 보니 사후관리나 예방의료, 건강상담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며 굳이 3차 병원을 찾아 몰려가거나 의료 쇼핑에 의존할 필요가 줄어든다.가족 주치의를 넘어 마을 주치의가 되는 것이다.
반대로 환자입장인 조합원들은 의료체계에 책임과 의무감을 가지게 되기에 직접 의료체계를 발전시키려는 노력을 한다. 최근에는 아기의 예방접종과 관련하여 접종기록을 누락하여 아기의 어머니로부터 문제제기를 받은 적이 있었다.이에 대해 당사자 조합원은 해당 문제에 대해 검토하고 같은 실수를 방지하기 위한체계를 만드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하였고 그 결과, 실제 의료현장에서 접종대상자와 그 가족들에게 신뢰와 편안한 마음을 형성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 이러한 쌍방향의 소통과 신뢰를 바탕으로‘민들레’는 꾸준한 발전과 성장을 이루고 있다.
2010년 검진센터 개소 후 많은 고객들의 이용과 사랑을 받은 민들레는 확장을 꿈꾸었다. 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의 가치에 더욱 부합하기 위해 공간과 시스템의 확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10평의 좁은 공간에서 시작했지만 올해 드디어 몇 년간의 확장 계획이 결실을 맺으며 법동검진센터 확장이전을 하였다. 더욱 활발한 시스템 구축이 가능해진 것이다. 진료와 치료 외에 생활 속의 건강 유지 모임, 교육, 건강활동도 수익에 관계없이 지원하며, 철학공부, 책읽기모임 등 다양한 인문학공부들을 진행하는 것을 격려하기도 한다. 생활습관을 직접 개선해나가며 교류할 때 건강한 사회를 이루고 건강한 인간의 완성이 이루어진다는 민들레의 가치가 반영된 것이다.
새로 확장 이전한 법동 민들레 건강검진센터
(제공: 민들레의료복지사회적협동조합)
물론 어려움은 있었다. 높은 비용과 낮은 수익률을 내는 협동조합 방식의 병원운영에서 지속가능성을 하는 경영은 쉽지는 않았다. 예를 들어 보건예방이나 주민조직활동에 들어가는 실무직원들의 인건비는 일반병원에서 지출되지 않는 비용이다. 그런데 돈을 더 들여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는 수치상 평가를 내릴 수 없어 수익에 포함이 되지 않는다. 그러니 단순한 수익비용구조로만 평가를 받을 때 다른 일반병원에 비해 불리 할 수 밖에 없다.
실제로 둔산지역에 의원과, 한의원, 치과의원을 운영하였는데 둔산한의원은생협 조합원들을 중심으로 믿을 수 있는 친환경재료를 사용하는 한약에 대한 수요가 매우 높고, 외부로도 그러한 특성들이 잘 소개되어 한약첩약을 중심으로 매출이 향상되고 있다. 그리고 둔산치과 또한 교정치료 전문의사 선생님을 영입하였는데, 이 경우도 도시지역의 특성에 감안한 전략이 적중되어 수익성에 기여했다. 그러나 둔산의원의 경우 이비인후과, 내과 등 주위의 경쟁이 치열한 수많은 병원들 사이에서 가정의학을 중심으로 하는 1차의료기관이 갖는 한계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정리 할 수 밖에 없었다.
비록 의원의 경우 문을 닫게 되었지만 이 일을 계기로 지역의 요구에 맞은 의료서비스 제공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고 검진센터확장 이전에서 이러한 과제를 풀어나갔다. 그 과정에서는 조합원들의 출자운동이 큰 힘이 되었고, 확장 이전 후 수익이 눈에 띄게 늘어 2~3년 안에는 이전에 따른 투자금이 회수되고 안정적인 재무상태를 나타낼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재 ‘민들레’는 대전에 온전히 뿌리를 내리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다. 즉 민들레의원이 자리잡은 건물을 매입하여 ‘우리 병원’을 설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월세와 각종 고정비용이 절감되고 환자들에게도 보다 안정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된다. 우리 지역의 건강센터를 만들어 ‘마을 주치의’의 역할을 제대로 해보겠다는 민들레의 의지가 담겨 있다. 무난히 이루어 진다면 나아가 민들레조합원이 설계하고 만든 요양시설을 설립할 예정이며 궁극적으로 10년 안에는 각 구마다 필요 의료시설을 설립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조합원에게 손편지를 쓰느라 여름 한 철을 다 보냈다고 말하는 조세종 대표. 그의 목소리에서는 뿌듯함과 고된 감정이 교차하는 듯 하였다. 조합원 수가 늘고 인지도도 높아지며 그에 따른 책임감과 일은 늘어났지만 힘든 만큼 의미 있는 미래를 꿈꾼다. 주민들과 의료진 사이의 신뢰를 쌓고 보건예방사업과 취약계층에 대한 지원사업을 촘촘히 이루어 나가는 민들레가 되는.마치 대전 곳곳에 다시 뿌리를 내리는 변화의 홀씨들처럼.